A multilateral hermeneutics space
우리는 누구나 팝작가입니다.
우주는 아직도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상태이며 여전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의 스토리의 추가를 존재의 많아짐의 내용으로 여길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충분히 가까운 곳에서 우주 팽창의 증거를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아마도 그것을 무한하다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시간 또한 정해지지 않은 무엇입니다. 요즘 시간은 빛이 우주의 팽창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여전히 등속이면서 절대 속도인 것으로 체감되는 자연과학적인 우주에서 사용하는 단위로서, 언뜻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기 반복과 상호 거래의 질서를 제공하기 위해 특정 자리수로 쪼개어 다소 무리한 듯하지만 다행히도 잘 관리되고 있는 무엇입니다. 어쩌면 왠지 모르지만 또 고쳐 써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시간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며, 혹은 어느 먼 오래된 언제인가부터 우리가 도출한 인과율이라는 맥락의 아래에 존재하는 무엇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그 여러 모습들 중에서, 오직 우리의 마음과 언어가 합의한 바대로 존재하는 임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언어도 알고 보면, 사실은 꽤나 많은 아슬아슬함 및 "이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자고 해도 결국은 다들 아시리라"는 식의 어물쩍 넘김과 모종의 중간 생략들을 거쳐서 어떤 상태에 도달해버린 무엇입니다. 그 위태한 간격을 메우면서 현실을 온전하게 유지시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맥락을 이해하는 충분한 영감과 여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주는 문학과 거의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문학 혹은 사람의 공감하는 마음들은 자기 내부의 자동 운행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인공 지능 엔진의 체계와 같은 것입니다. 임의의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운행할 수 있고,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도 이제 앞으로 되어갈 것인 자유롭고 열린, 아마도 팝로그는 그러한 무엇입니다.